그 소녀.

Cambodia 2020. 9. 4. 22:22

한 포대에 10키로씩 담긴 쌀을 60포대 구입하고 간장들, 식용유에다가 제과점 빵까지 100개 주문해서 차에 실었다. 오랜만에 가는 길이었다. 익숙한 길, 울퉁불퉁한 길, 약간 물비린내가 나는 길, 바람에 생선냄새가 실려오는 길 ...그런 길을 덜컹덜컹 가다보면 깜뽕루엉 수상마을 항구에 이른다. 

오늘은 작은 배가 두 척 기다리고 있어 물건은 한 배에 다 싣고 또 한 배는 사람이 탔다. 코노라 바이러스 이전에는 토요일 아침마다 미사를 위해 매주 가곤 했었다. 미사가 없어진 후에는 어쩌다가 오늘처럼 누군가 가난한 이를 후원하고 싶은 마음을 보내올 경우 이렇게 선물을 잔뜩 배에 싣고 건넜다.

사람들이, 어른들과 아이들이, 가족들이 각각의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성당으로 향해오는 풍경을 보니 마음이 설렜다.

 

그곳의 아이들은 주민등록증이 없어 정식 학교에 가지 못하는 베트남 가정의 아이들이다.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다. 그저 성당에서 크메르어, 베트남어 수업 시간을 마련해 아주 조금 배울 뿐이다. 그러다가 곧 어린 나이에 생계 위한 일터로 내몰리게 된다. 


한 소녀가 있었다. 이름은 윙. 그 나이치고 좀 진하게 화장을 하는 편이라 인상이 강하다. 마른 몸에 검정 긴 머리를 하고 수줍어 하는 모습이 예뻤다. 미사가 있던 시절에 나는 몇몇 아이들과 함께 성가 연습을 했는데 크메르어를 읽을 수 있는 아이들만 성가를 부를 수 있었다. 윙은 늘 가까이 앉았으나 크메르어를 모르니 성가연습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자연스레 크메르어를 할 수 있는  청소년들과 소통하곤 했었다. 

 

오늘은 나와 자주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오지 않고 구석에 앉아 배시시 웃고 있는 윙과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이라 너무 반가웠다.

"그동안 잘 지냈니? 요즘 무슨 일하니?"라고 물었는데 윙이 웃으며 뭐라고 중얼거리며 손사레를 쳤다. 분명 크메르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맞다. 이 아이는 그랬지. 그런데 그렇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반응이고 응답으로 느껴지며 그모습이 그저 고맙고 내 말이 이해가 되고 안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빵 웃음을 터뜨린 후 어깨동무를 하며 "그래 괜찮아!! 우리는 사진이나 찍자!" 그랬다.

그러고는 우리는 함께 얼굴을 나란히 하고 셀카형태로 우리가 화면에 나오도록 하고선  카메라를 봤는데.....갑자기 윙의 수줍은 표정이 환한 함박웃음을 바뀌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그 나이의 익살맞은 귀여운 표정으로 브이자까지 그리지 않는가. 그게 너무 웃겨 윙을 봤는데 내가 알던 윙이 아닌 자신의 밝고 빛나는 모습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윙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마치 '난 이런 사람이에요 그동안 나한텐 관심이 없었죠?' 하는 듯 했다. 그랬구나. 네가 늘 거기에 있었는데 난 너를 잘 알지 못했구나. 소녀의 새로움을 알게 되어 기쁨과 동시에 미안함도 올라왔다. 또한 윙에게 환대받는 듯한 느낌이 좋은 나 자신도 의식했다. 사실은 나도 그곳에 갈때면 또 한층 더 먼 이방인 같았었다. 벌써 몇 년째 가곤 했지만 캄보디아에서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의 공동체라 내가 있는 푸르사트 성당 공동체와는 또 다른 분위기 속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딱히 내가 하는 역할이라곤 그저 미사 반주 봉사를 하는 것 뿐, 그도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었다. 나도 실은 그들 속에 들어가고 싶었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듣고 싶었고 필요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윙의 미소가 그런 구석에 있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듯 해 느낌이 따뜻하고 좋았다.  


식품을 받아 사람들은 다시 배를 타고 성당에서 멀어져갔다. 그 멀어지는 순간에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했다. 물 위에서 고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오늘 받아간 식품은 얼만큼의 도움이 되는 것일까, 땅 위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해 왠만한 역경에는 능숙하게 단련된 그들일 것 같다. 그러니 삶의 고통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덜하고 익숙하고 살아가기에 괜찮게 느끼는 정도만큼만이면 제발 좋겠다고 속으로 빌었다. 잘 가세요. 모두들. 언제나 그랬듯 힘내서 살아가길 바래요. 윙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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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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